Jiwon Lee

손몽주 《떠다니는 조각들 : Floating Sculptures》 — 리뷰

부산 수영구의 유니랩스 갤러리에서 손몽주 작가의 개인전 《떠다니는 조각들 : Floating Sculptures》이 2월 16일부터 3월 23일까지 진행되었다.

여러 비엔날레와 전시공간에서 보았던 손몽주 작가의 지난 작업들은 특정 위치에서 인공물, 혹은 기계생산된 공산품으로서의 오브제(고무밴드, 부표, 어망 등)를 강렬한 색과 함께 드러냄으로써, 장소-조건적(site-conditioned)이진 않아도 다분히 장소-특정적(site-specific)이었는데, 분명 그의 작업의 사유(思惟)는 관람자와 설치물, 그리고 이 둘이 존재하는 장소 사이 삼차원적 좌표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장소의 제약과 그 경험적 조건에서 다소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 작가는 일정 단위의 곡선과 직선을 교차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패턴의 형태와 다채로운 색상이 특징적인, 거울과 스테인리스 금속을 이용한 조각들을 벽면에 걸어둔다. 엄밀히 말해 ‘작업’보다는 상품화된 아이콘, 다시 말해 ‘작품’이라 부르기 어울리는 모양새다. 그리하여 충분히 화이트큐브에 어울리는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손몽주의 ‘떠다니는 조각들’이 제도비판적 미학에서 제도공간에서의 유통이라는 측면으로 나아간 미니멀리즘의 발걸음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 하다. 그러나 위층의 세 번째 전시실로 올라가면, 1층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좀 더 거칠고 모난, 채집된 오브제들과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오브제들, 드로잉들이 뒤섞인 전시를 마주하게 되고, 여기에 이르러서야 마치 잃어버린 미싱링크(Missing Link)를 되찾은듯, 작가의 대형 설치 작업들과 연결되는 그의 언어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보니, 층계를 두고 양분된 두 전시—하나이지만 두개인 듯한—의 병치(竝置)는 흥미롭게도 작가의 ‘떠다니는’ 여러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1층의 수려하게 마감된 조각들이 손몽주라는 작가 개인이 계속 두드려야만 하는, 어떤 미술과 현실세계에 대한 끝없는 대화이자 타협점이라면, 2층의 투박한 오브제와 드로잉들은 작가가 스스로의 작업세계를 어떻게 확장하고 지속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공간 스케치이자, 이번 전시의 본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오브제를 선별해 모으고, 그것을 공간 속에서 배치하고 조화시키는 일련의 작업 방식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모종의 부지런한 의식이 아닐까. 파도에 휩쓸리는 부유물처럼, 언제 사라지고 잊힐지 모르는 ‘나’의 경험과 인식을 주워 동시대에 각인시키는 과정, 그것이 품(品)이 아니라 업(業)으로서의 미술이다.

미술이 반드시 반(反)자본주의일 필요는 없음에도, 오늘날 우리가 ‘실험적’이라 치켜세우는 많은 예술 형식들은 필연적으로 그곳을 향해 나아간다. 작가로서 ’업’의 성공이 반드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 반대로 작가가 부(富)를 얻었다고 해서 그것이 작가적 성공이라 치부할 수도 없다는 점을 유념하면, 그 균형을 찾아가야 하는 그들의 끝없는 고행에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이 시대에 예술을 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에 맞선다는 의미이다. 그 삶은 회의와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뿐더러, 청중도 보상도 없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무모하게 행하는 삶이다.”1

그렇기에 전시장에서 관객의 의무란, 의미 없는 텍스트나 꾸밈말의 나열에 휘둘리지 않고, 작가의 작업이 얼마나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을 반영하며 그것에 대해 발화(發話)하려 하는지 충분히 고찰하며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 이제 또 다른 공간에서, 손몽주 작가의 다른 작업들이 어떤 이야기로 재차 이어질지 기대해 본다.


  1. 데이비드 베일즈, 테드 올랜드,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ART & FEAR』, 임경아 옮김, (루비박스, 2012), 16-18.